정의
일제강점기 때, 부산의 일신여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소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주경애로부터 민족적인 정신감화를 많이 받아왔다. 이에 3월 10일경 새벽 기숙사 주변에 뿌려진 격문의 전단을 먼저 발견한 학생이 주경애에게 달려가 보이자, 이 전단은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라는 신호임을 알리고 은밀히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에 연락을 취하는 한편, 동료교사들을 규합하여 본교에서도 결행할 것을 협의한 뒤 이 사실을 고등과 학생들에게 알렸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고등과 학생 11명은 밤을 기다렸다가 벽장속에 숨어서 치마의 옥색물을 탈색하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1일 김응수(金應守) 외 고등과 학생 등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기숙사를 뛰쳐나와 좌천동 일대를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거리의 대중들도 호응하여 학생들과 합류한 시위군중이 수백명이 넘었다. 이 부산 좌천동의 만세시위는 곧 주경애가 중심체가 되어 이루어진 여성독립운동의 한 장(場)이었다. 이들은 곧 체포되어 학생 11명은 모두 6개월의 언도를 받았고, 주경애·박신연(朴信淵)은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참고문헌
- 『동래학원팔십년지』(동래학원팔십년지편찬위원회, 1975)
- 『한국현대사』4(김성식 외, 신구문화사, 1971)
- 『3·1운동실록』(이용락, 사단법인 3·1동지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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