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의 본관은 상주(尙州)이고, 자는 경유(景游)이며, 호는 신재(愼齋) · 남고(南皐)이다.
고려 말에 고조가 경상도 합천에 우거하였으나, 아버지대에 칠원으로 옮겨와서 그 곳에서 태어났다. 1522년(중종 17)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강원도도사, 곤양군수 등을 지냈다.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에 부임하여 학교를 일으키는 데 힘써 1542년 백운동(白雲洞)에 안향(安珦)의 사당을 세웠다. 1543년 우리 나라 서원의 효시인 백운동서원(紹修書院)을 창설하였다.
그 뒤 직제학 · 도승지 · 대사성을 거쳐 1551년(명종 6)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을 건립하였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칠원의 덕연서원(德淵書院)에 주향되었고, 백운동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저서로 『죽계지(竹溪志)』 · 『해동명신언행록( 海東名臣言行錄)』 · 『진헌심도(進獻心圖)』 등이 있고, 문집으로 후손들이 편집한 『무등잡고(武陵雜稿)』가 있다.
묘소의 봉분은 원형이며, 전면 중앙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비는 화관형으로 만들었는데 대석에는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봉분 우측에도 묘비가 세워져 있다. 봉분 정면의 묘비보다 훨씬 큰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역시 화관형을 하고 있으며 대석에는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묘비의 장식이 봉분 정면의 것보다 훨씬 화려하다.
상석 앞으로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는데, 글자를 새긴 것이 독특하다. 우측 망주석에는 '수무부모(誰無父母)', 좌측에는 '숙비인자(孰非人子)'라고 새겼다. 묘역에는 주세붕의 묘소 외에 부친 주문보(周文俌), 조카 주조(周慥)의 묘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