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서명은 ‘우공주의집람’인데, 권차(卷次)는 10권 12책(권3·4가 상·하로 분책)의 『소보우공주의』에 따랐으나, 장차는 연속되어 있다.
편자와 간행에 대한 기록이 책에는 없으나,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권2에 의하면, 이문(吏文)의 참고서로서 최세진(崔世珍)의 주관으로 『이문집람(吏文輯覽)』·『박고집람(駁稿輯覽)』·『주의택고집람(奏議擇稿輯覽)』과 함께 1541년(중종 36)에 편찬되었다고 한다.
연대는 『이문집람』 범례의 1539년의 잘못이나, 그 밖의 기록은 신빙성이 있다. 어숙권 자신이 편찬실무에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의 책이 근래에 모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문집람』 1책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그 밖의 책들도 임진왜란 이전의 간본이 2종이나 알려지게 된 것이다.
『주의집람』·『박고집람』·『주의택고집람』은 1책으로 묶였는데, 을해자본과 갑인자본이 전한다. 을해자본은 원간본으로 추정되며, 일본의 존경각문고(尊經閣文庫) 소장이다. 현재 『주의집람』 1책, 『박고집람』과 『주의택고집람』 1책으로 되었으나 일본에서 개장한 결과에 의한다.
갑인자본은 1책으로 고려대학교 도서관 만송문고(晩松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서명에 ‘증정(增定)’이라는 관칭(冠稱)이 있다. 16세기 중엽에 약간의 손질을 하여 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책의 주석은 『이문집람』과 꼭같이 한문으로 되었으나 간혹 한글표기에 의한 고유어와 이두가 나타난다.
한글표기에는 방점이 없으나 ㅿ, ㆁ은 정확하게 사용되었다. 국어사연구와 이문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최세진이 『이문집람』과 이들 책을 편찬함으로써 이문 학습의 교재를 완비한 공로가 있음을 알려주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