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 장성리 유적

  • 역사
  • 유적
  • 석기
북한 자강도 중강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토기편과 석기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유물포함층.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안승모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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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자강도 중강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토기편과 석기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유물포함층.

내용

장성리의 남서쪽 압록강 하안 충적층에 분포되어 있는데, 1955년 홍수에 의하여 하안 퇴적층이 무너짐으로써 발견되어 1960년 가을 북한의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 의하여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조사는 유적의 범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네 곳을 시굴하는 정도에서 그쳤는데, 유물이 출토되는 문화층은 현 지표에서 330㎝ 정도 지하에 10∼30㎝ 정도로 퇴적되어 있었다.

문화층은 이와같이 깊이 퇴적되어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각 시대의 것들이 뒤섞여 출토되고 있어, 이 층 자체가 상류 쪽에서 홍수에 의하여 흘러내려와 퇴적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출토된 유물들은 토기편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석기가 끼어 있다. 출토된 토기편에는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ㆍ새김무늬토기ㆍ덧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겹아가리토기 및 미송리형토기ㆍ묵방리형토기, 초기철기시대의 노남리형토기 등이 보인다.

석기로는 살촉 등의 흑요석기, 돌도끼[石斧]ㆍ반달돌칼ㆍ슴베살촉[有莖石鏃]ㆍ삼릉촉(三菱鏃)ㆍ찔개살 등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은 유물상으로 볼 때 이곳의 빗살무늬토기ㆍ새김무늬토기ㆍ미송리형토기는 압록강 하류의 유적인 토성리와 신암리 및 미송리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고, 겹아가리토기는 동북지방과 유사성을 나타내어 이 지방의 문화가 서북ㆍ동북 지방의 영향 아래 성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중강군장성리유적조사보고」(김종혁, 『문화유산』1961년 6호, 과학원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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