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년(목종 12) 현종이 즉위한 직후에 중추원(中樞院)과 은대(銀臺), 그리고 남·북선휘원(南北宣徽院) 등 3관부를 합쳐 만든 것이다. 따라서 중대라는 명칭은 발해의 중대성과는 무관하며, 중추원과 은대의 합성어인 것으로 보인다.
그 기능에 있어서는 중추원의 숙위와 은대의 왕명출납, 선휘원의 의식(儀式) 관장 등 국왕 측근의 기무(機務)를 총괄함으로써 강력한 권력기구가 되었다. 관직으로는 사(使)·부사(副使)와 직중대(直中臺)·겸직중대(兼直中臺)가 두어져 있었다.
이러한 권력기구의 출현은 다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한 강조(康兆) 등이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가능하였던 것으로 그 관직은 강조 일파에 의하여 독점되었다. 그러나 곧 강조가 거란과의 전쟁중에 제거되자 1011년(현종 2)에 중대성 역시 폐지되고 중추원이 부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