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성

  • 역사
  • 제도
  • 고려 전기
고려 전기에 중추원의 숙위와 왕명출납 등을 관장하던 중앙 관청.
제도/관청
  • 상급 기관
  • 설치 시기1009년(목종 12)
  • 폐지 시기1011년(현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익주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전기에 중추원의 숙위와 왕명출납 등을 관장하던 중앙 관청.

내용

1009년(목종 12) 현종이 즉위한 직후에 중추원(中樞院)과 은대(銀臺), 그리고 남 · 북선휘원(南北宣徽院) 등 3관부를 합쳐 만든 것이다. 따라서 중대라는 명칭은 발해의 중대성과는 무관하며, 중추원과 은대의 합성어인 것으로 보인다.

그 기능에 있어서는 중추원의 숙위와 은대의 왕명출납, 선휘원의 의식(儀式) 관장 등 국왕 측근의 기무(機務)를 총괄함으로써 강력한 권력기구가 되었다. 관직으로는 사(使) · 부사(副使)와 직중대(直中臺) · 겸직중대(兼直中臺)가 두어져 있었다.

이러한 권력기구의 출현은 다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한 강조(康兆) 등이 권력을 장악함에 따라 가능하였던 것으로 그 관직은 강조 일파에 의하여 독점되었다. 그러나 곧 강조가 거란과의 전쟁중에 제거되자 1011년(현종 2)에 중대성 역시 폐지되고 중추원이 부활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고려(高麗)의 중추원(中樞院)」(변태섭,『진단학보(震檀學報)』41,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