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이지호의 아들 이승우(李承愚)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의림(鄭義林)의 서문과 권말에 윤자현(尹滋鉉)·정시림(鄭時林)의 발문이 있다.
11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12수, 권2에 서(書) 24편, 권3에 기(記) 16편, 권4에 서(序) 6편, 권5에 발(跋) 2편, 권6에 문(文) 2편, 권7에 행장 15편, 권8에 묘갈명 4편, 권9에 사실(事實) 5편, 권10에 잡저 5편, 별권 부록에 행장·묘지명·묘갈명·사실·전(傳)·찬(贊)·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제촉석루(題矗石樓)」는 진주(晉州)의 촉석루에서 남강(南江)의 물소리를 들으며, 마치 임진왜란 때 죽어간 삼장사(三壯士)의 천추에 맺힌 한을 듣는 것 같다고 읊은 것이다. 「견파척화비(見破斥和碑)」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척화비가 파괴된 것을 보고, 이를 개탄하며 시국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나타낸 시이다. 「유감(有感)」에서는 중국 전국 시대의 제(齊)나라 노중련(魯仲連)의 고절(高節)을 비유하여 자신의 의경(意境)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서(書)의 「상면암최선생(上勉菴崔先生)」은 최익현(崔益鉉)에게 보낸 것으로, 그의 우군애국(憂君愛國) 정신과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을 찬양한 내용이다. 이밖에 한계원(韓啓源)·유후조(柳厚祚) 등 당시의 정승에게 답한 편지와 정의림·기우만(奇宇萬) 등 이름난 학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대개 간략한 안부 편지이다.
기에는 「청심당선생부조묘유지기(淸心堂先生不祧廟遺址記)」 등 각종 유적지에 대한 기행문이 6편 있으며, 기타 타인의 호(號)에 대해 쓴 기문이 있다. 그 가운데 「견절비유기(見折碑有記)」는 척화비가 부서진 것을 통탄한 글이다. 서(序)에는 「향약서(鄕約序)」와 「흥학계서(興學契序)」 등이 있어, 저자가 풍속 교화와 후생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사실(事實)은 모두 행장의 형식으로 된 글이며, 잡저 가운데 「자서(自敍)」는 자기의 지나온 일을 회상하며 인생관을 피력한 장편의 글이다. 「지구문인문답(知舊門人問答)」은 김만원(金萬源)·정재한(鄭在翰)·박우동(朴瑀東)·홍승원(洪承源)·오문섭(吳文燮) 등에게 태극(太極)·이기(理氣)·귀신(鬼神) 등 성리학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경의(經義) 해석 등 총 55개 항목에 걸쳐 간략하게 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