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3월 25일 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제정, 공포되어 전국에 걸쳐 근대적 재판제도를 창설하게 되었는데 지방재판소는 그 제1심 재판소이다.
같은 해 윤5월 10일 칙령 제114호로 문을 열기로 하고, 그 달 15일부터 준비되는 대로 주요 도시부터 문을 염과 동시에 종래 감영 · 유수영(留守營) 등 관아에서 행하여 오던 재판사무는 해당 지방재판소로 인계하도록 하였다.
당시 지방재판소의 신설 예정지는 인천 · 부산 · 원산 · 충주 · 홍주 · 공주 · 제주 · 남원 · 나주 · 안동 · 진주 · 대구 · 개성 · 강릉 · 춘천 · 의주 · 해주 · 평양 · 경성 · 강계 · 갑산 등 21개 도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감영에 합쳐서 설치하고, 관찰사 · 목사 등이 판사를 겸임하였다. 또한 각 지방 수령들은 여전히 재판사무를 관장하였다.
1896년 8월 15일에는 지방제도를 13도 관찰사제로 부활함에 따라 법을 개정, 한성 · 부산 · 경흥 · 인천 · 원산과 13도에 지방재판소를 개설하도록 하였다.
이어 공주에 충청남도재판소, 충주에 충청북도재판소, 광주에 전라남도재판소, 전주에 전라북도재판소, 진주에 경상남도재판소, 대구에 경상북도재판소, 해주에 황해도재판소, 춘천에 강원도재판소, 평양에 평안남도재판소, 정주에 평안북도재판소, 함흥에 함경남도재판소, 경성에 함경북도재판소, 제주에 제주목재판소를 설치함으로써 지방재판소가 도재판소로 되었다.
이때의 지방재판소는 제1심이 아니라 수령의 재판에 대한 상소심인 셈이었다.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 12월 23일에는 새로 「재판소구성법」을 제정하여 3심4개급제가 확립되어 구재판소(區裁判所) 위에 지방재판소를 두었으며, 1908년 8월 1일부터 경성 · 공주 · 함흥 · 해주 · 대구 · 진주 · 광주의 지방재판소와 16개 구재판소를 개청하도록 하였다.
이때는 통감부가 설치된 때인데, 이듬해인 1909년 통감부재판소로서의 지방재판소로 되었고, 다시 1910년의 국권 상실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지방재판소로 되었다가 1912년 지방법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