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중종 29) 무과인 관혁(貫革)시험에 급제하였고, 이듬해 의정부와 병조가 무신으로 배양(培養)할 인물 7인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1538년(중종 33)에는 온성부사(穩城府使)와 경상도수사를 역임하였으나, 1544년 충청도수사를 역임할 때 중국인을 상해하였다 하여 추고(推考)를 받기도 하였다.
1546년 명종이 즉위하자 상진(尙震)·이준경(李浚慶) 등과 함께 원종공신에 가자(加資)되었다. 포도대장(捕盜大將)을 역임할 때 성질이 포악하고 유생을 모함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 함경남도병사로 있으면서 지방민을 동원해 옥을 캐어 조정 상신(相臣: 삼의정 즉,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일컬음)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 빌미가 되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