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부(韓岐部) 출신. 연권(連權)의 딸이다. 효행이 뛰어나 『삼국사기』에 열전이 있으며, 『삼국유사』에도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빈녀양모(貧女養母)」라는 제목으로 행적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동국여지승람』에 그녀의 효행이 채록되어 있다.
신라 진성여왕 때 지은은 효성이 지극해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품팔이나 구걸을 해 봉양했는데, 그것으로 부족해 부잣집에 몸을 팔아 쌀 10여 석을 받아 식량을 삼았다. 종일 일하고 밤에 돌아와 밥을 지어드렸다. 3, 4일이 지나자 어머니가, 밥은 좋은데 맛이 전과 같지 않고 속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으니 웬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사실을 말하고 모녀는 통곡을 하였다.
이 때 화랑 효종랑(孝宗郎)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부모에게 청해 곡식 100석과 옷가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의 낭도 천여 명도 각기 곡식 한 섬씩을 내어주었다. 왕도 이를 듣고 벼 500석과 집 한 채를 주고 부역 또한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어 그 집의 재산을 지켜주었고, 동네이름을 효양방(孝養坊)이라고 하였다. 또, 당나라 왕실에도 그의 효행을 글로써 전하였다.
뒤에 지은의 집을 내어 절로 삼았는데 절 이름을 양존사(兩尊寺)라 했다 한다. 그의 이와 같은 효행이 주는 교훈도 적지 않지만, 그 행장은 우리에게 다른 면에서도 적지 않은 것을 알려준다. 즉 고대사회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고 특히 일반 백성들의 삶을 잘 전하는 기록은 더욱 적다. 그런데 그 행장을 살펴보면, 당시 일반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도적을 막기 위해 군사를 보내 파수를 보게 한 사실을 보면 당시 사회상의 어지러운 일면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