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 역사
  • 인물
  • 남북국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한 효녀.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여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한기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기흥 (건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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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한 효녀.

개설

한기부(韓岐部) 출신. 연권(連權)의 딸이다. 효행이 뛰어나 『삼국사기』에 열전이 있으며, 『삼국유사』에도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빈녀양모(貧女養母)」라는 제목으로 행적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동국여지승람』에 그녀의 효행이 채록되어 있다.

생애와 활동사항

신라 진성여왕 때 지은은 효성이 지극해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품팔이나 구걸을 해 봉양했는데, 그것으로 부족해 부잣집에 몸을 팔아 쌀 10여 석을 받아 식량을 삼았다. 종일 일하고 밤에 돌아와 밥을 지어드렸다. 3, 4일이 지나자 어머니가, 밥은 좋은데 맛이 전과 같지 않고 속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으니 웬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사실을 말하고 모녀는 통곡을 하였다.

이 때 화랑 효종랑(孝宗郎)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부모에게 청해 곡식 100석과 옷가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의 낭도 천여 명도 각기 곡식 한 섬씩을 내어주었다. 왕도 이를 듣고 벼 500석과 집 한 채를 주고 부역 또한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어 그 집의 재산을 지켜주었고, 동네이름을 효양방(孝養坊)이라고 하였다. 또, 당나라 왕실에도 그의 효행을 글로써 전하였다.

뒤에 지은의 집을 내어 절로 삼았는데 절 이름을 양존사(兩尊寺)라 했다 한다. 그의 이와 같은 효행이 주는 교훈도 적지 않지만, 그 행장은 우리에게 다른 면에서도 적지 않은 것을 알려준다. 즉 고대사회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고 특히 일반 백성들의 삶을 잘 전하는 기록은 더욱 적다. 그런데 그 행장을 살펴보면, 당시 일반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도적을 막기 위해 군사를 보내 파수를 보게 한 사실을 보면 당시 사회상의 어지러운 일면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 「三國時代の良人農民」(金錫亨, 『古代朝鮮の基本問題』, 學生社,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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