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한 효녀.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이 때 화랑 효종랑(孝宗郎)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부모에게 청해 곡식 100석과 옷가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의 낭도 천여 명도 각기 곡식 한 섬씩을 내어주었다. 왕도 이를 듣고 벼 500석과 집 한 채를 주고 부역 또한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어 그 집의 재산을 지켜주었고, 동네이름을 효양방(孝養坊)이라고 하였다. 또, 당나라 왕실에도 그의 효행을 글로써 전하였다.
뒤에 지은의 집을 내어 절로 삼았는데 절 이름을 양존사(兩尊寺)라 했다 한다. 그의 이와 같은 효행이 주는 교훈도 적지 않지만, 그 행장은 우리에게 다른 면에서도 적지 않은 것을 알려준다. 즉 고대사회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고 특히 일반 백성들의 삶을 잘 전하는 기록은 더욱 적다. 그런데 그 행장을 살펴보면, 당시 일반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도적을 막기 위해 군사를 보내 파수를 보게 한 사실을 보면 당시 사회상의 어지러운 일면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三國時代の良人農民」(金錫亨, 『古代朝鮮の基本問題』, 學生社,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