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정평도호부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계유정난
  • 본관충주(忠州)
  • 사망 연도1453년(단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사복시사|첨지중추부사|정평도호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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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정평도호부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충주(忠州). 우의정 정분(鄭苯)의 생질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4년(세종 26) 삼군진무(三軍鎭撫)로서 경상도선위관에 차견(差遣)되어 왜구의 침입으로 소란된 민심을 무마시켰다.

그 뒤 1448년 지태안군사(知泰安郡事)로 파견되었고, 1450년(문종 즉위년)에 입조하여 특지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발탁되었고, 다음해 첨지중추부사가 되면서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를 겸직하였다.

1453년(단종 1)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어 부임을 기다리던 중 계유정난이 일어나면서 수양대군(首陽大君)일파에 의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과 반역을 도모하였다.”고 논죄되어 전라도 영암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그 해 조수량(趙遂良) · 안완경(安完慶) · 이양(李穰) · 민신(閔伸) 등과 함께 교살되었다.

참고문헌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단종실록(端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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