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 우의정 정분(鄭苯)의 생질이다.
1444년(세종 26) 삼군진무(三軍鎭撫)로서 경상도선위관에 차견(差遣)되어 왜구의 침입으로 소란된 민심을 무마시켰다.
그 뒤 1448년 지태안군사(知泰安郡事)로 파견되었고, 1450년(문종 즉위년)에 입조하여 특지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발탁되었고, 다음해 첨지중추부사가 되면서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를 겸직하였다.
1453년(단종 1)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어 부임을 기다리던 중 계유정난이 일어나면서 수양대군(首陽大君)일파에 의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과 반역을 도모하였다.”고 논죄되어 전라도 영암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그 해 조수량(趙遂良) · 안완경(安完慶) · 이양(李穰) · 민신(閔伸) 등과 함께 교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