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둘레는 약 1,450m이다. 현재 동·서·남문지와 수구문(水口門) 등이 남아 있다. 산성이 있는 직산고을의 진산(鎭山)을 사산(蛇山)이라고 부르는데 직산의 삼국시대의 옛 명칭인 사산에서 유래된 것이다. 사산현은 한때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 말기에는 백제와 신라 양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요충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의 형식은 테뫼형[山頂式: 산 정상을 둘러싼 산성]의 외곽에 접속하여 포곡형(包谷型: 능산과 계곡을 따라 쌓아 놓은 산성)을 확장한 복합형이다. 테뫼형 산성의 규모는 동서 300m, 남북 150m로 총둘레는 약 750m이다. 포곡식 산성은 주성인 테뫼형 산성의 동서 양단에서 시작하여 각각 그 바깥쪽으로 연장된 능선상에 성벽을 쌓았으며, 북쪽 경사면 아래에 있는 좁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다. 이 바깥쪽으로 연장된 성벽의 길이는 1,030m이며 여기에 주성까지 포함한 산성의 전체 주위는 1,450m이다.
문지는 동·서·남으로 세 곳이 있고 그 너비는 약 4m이다. 성벽은 부분적으로 토석(土石)을 섞어 쌓은 부분도 있으나 거의 토축으로 되어 있다. 추정 서문지에서 북문지에 이르는 성벽이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였는데, 그 높이는 1.5∼2m이며, 상변의 너비는 1.2∼1.5m이다. 수구는 지형으로 보아 북쪽의 계곡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논밭으로 변하여 원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사산성은 구조상으로 보아 테뫼형 산성이 먼저 축조되고 포곡형 산성은 뒤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는 대개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토기류(土器類)와 와류(瓦類)로 토기류 중 보시기류나 호류는 5∼6세기 전반의 백제·고구려와 관련되고 6세기 후반의 신라계 유물인 단각고배(短脚高杯) 등이 있다. 와류는 선조문(線條文), 격자문(格子文), 어골문(魚骨文), 복합문(複合文) 등 다양하다.
사산성 지역은 백제시대 위례성(慰禮城)이었다는 전통시대 유학자들의 학설이 전하며, 삼한시대 진왕(辰王)이 도읍한 목지국(目支國)이 바로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문헌사 및 고고학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