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양(驪陽). 아버지는 판전농시사(判典農寺寺) 진용보(陳用甫)이다.
1402(태종 2)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1404년(태종 4) 원자시학(元子侍學)에 제수되었다.
1419년(세종 1) 이전에 나주목교수(羅州牧敎授)로 파견되고, 1424년(세종 6) 회양도호부사(淮陽都護府使) 재직 중 조정의 승인을 받지 않고 환곡을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준 일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434년(세종 16) 당상관에 오르면서 사간원우사간대부(司諫院右司諫大夫)에 발탁되었다. 이후 세종대를 통하여 1435년에는 좌사간대부·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을 거쳐, 이듬해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고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