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은 서원마을 부근에 있는 옥녀봉 동쪽 암반 위에 새겨져 있다.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진 암반이 위치한 곳은 마을 사람들이 ‘장수밭골’이라 부르는 장소인데, 마애불이 어느 장수의 상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 전해지는 구비전승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마애여래입상은 일반적인 불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체가 두껍게 표현되어 있으며 옷 주름은 직선에 가깝게 규칙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머리 위에는 모자를 쓴 것 같은 장식이 있다. 마치 투구를 걸치고 갑옷을 입은 장수의 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천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의 상호는 원형에 가까우며 두광 역시 원형이다. 두광의 상부에는 삼각형 문양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문양은 두광 위에만 표시되어 있는데 두광 주변의 화문이 형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동그란 상호의 이목구비는 일반적인 불상의 얼굴과 차이를 보인다. 머리 위에 육계는 없으며 이마 중앙에는 백호가 있다. 눈은 가늘게 옆으로 뻗었고 입은 작게 표현하였다. 귀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 나비의 날개와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마애여래입상의 상호는 원형으로 단순하게 얼굴 윤곽을 표현하고 있어서 나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목 부분에는 삼도가 있다.
진천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이 착용하고 있는 법의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 형태이다. 가슴은 노출되어 있으나 가슴 부위에 마치 옷 주름처럼 주름이 잡혀 있다. 어깨와 팔의 옷 주름은 단순한 수직선을 음각으로 표현하였다. 다리 사이에는 끈 자락이 내려온 것 같은 형태의 돋을 띠가 표현되었다. 양다리 사이에는 수직선에 가까운 ‘U’자의 옷 주름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는 장인이 조성한 작품은 아니지만, 독특한 형태 등에서 장인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런데 진천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이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사항이라 할 수 있다.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은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에서 북쪽으로 약 19㎞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석조보살입상은 960년경 고려 광종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조성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은 면류관형 방형 보개를 착용한 최초의 불상이며 광종의 ‘황즉불(皇卽佛)’사상을 반영한 불상이라 할 수 있다.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을 모방한 불상은 안성과 용인, 진천, 원주 등 경기 · 충청 · 강원권에 다수 분포하고 있다.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에서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을 모방한 부분은 불상의 하체 부분이다. 특히 다른 불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리 사이의 돋을 띠와 옷 주름 등은 노원리 마애불이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모방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즉불’ 사상이 반영된 불상은 1030년경 조성된 당진 안국사지 석조삼존불입상에서도 확인되듯이 11세기경에도 조성되었다. 진천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은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의 외형적 형태만을 단순히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노원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중기 이후 조성된 불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