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높이가 7.5m에 이르는 대형 석불로 현재 용화사 경내에 고려시대 조성된 석조 보살입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근래에 올린 팔각 보개를 머리 위에 착용하고 있는데, 원래는 평면 방형에 가까운 이맛돌이 있었으며 그 위에 원정모 형태의 보개가 있었다. 본래부터 있었던 보개를 새로운 형태의 팔각 보개로 바꾼 이유는 불상이 착용했던 원정모 형태의 보개가 6 · 25전쟁 중 파손된 머리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올린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근거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의 사진을 보면 석불의 머리에는 최근에 바뀐 보개 이전에 석불이 착용하고 있던 보개와 동일한 형태의 것이 있었다.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의 머리는 발제선 위에 머리 부분을 일부만 표현하고 전체적으로 편평하게 만들었다. 불상을 만들 당시부터 보개를 올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잔존한 부분을 통해 보면 불상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표현되지 않은 소발형태이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이마 위의 발제선 바로 위에는 수평의 테두리가 머리를 두르고 있다. 살이 오른 형태의 상호는 단정하며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선명한 삼도가 있고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목걸이는 세 개의 줄이 세 개의 장신구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양어깨를 덮는 통견 형태의 대의를 착용하고 있다. 옷 주름은 가슴 아래부터 ‘U’자 형태로 흘러 내린다. 불상의 손은 다소 작은 편이다. 양손은 연꽃 가지를 살며시 잡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 위에도 연꽃 봉오리가 조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불상이 들고 있는 연꽃 봉오리는 용화(龍華)로 여겨지고 있으며 고려시대 불상에서 다수 확인된다. 용화를 들고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은 미륵상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륵상이 용화인(龍華印)을 결하고 있는 것은 미륵이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용화삼회의 설법을 하는 것을 ‘용화’라는 꽃을 통해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려 전기에는 여래형 대의를 착용한 대형의 보살입상이 조성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삼존불입상 등이다. 이러한 대형 불상들은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양식의 불상으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거대 석불의 한 형태이지만 통일신라 이래 계승되어온 전통적인 불상 양식의 계보를 잇는 불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