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해 내려오는 서예가의 글씨를 응용하여 새긴 비(碑).
내용
우리 나라의 집자비로는 성교서에서 집자한 무장사아미타여래조상사적비(鍪藏寺阿彌陀如來造像事蹟碑)가 처음이다. 신라 애장왕 즉위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는 신라 소성왕의 계화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집자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는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흥법사진공대사탑비(興法寺眞空大師塔碑)와 954년(광종 5)에 건립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가 있다.
진공대사탑비의 ‘臣崔光胤奉 敎集 太宗文皇□□□(신최광윤봉 교집 태종문황□□□)’과, 890년(진성여왕 4)에 건립된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 1962년 지정)에 당태종이 쓴 온탕(溫湯)·진사(晋祠) 두 비에 관한 기재로 미루어 보아 당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는 김생(金生) 글씨의 집자임을 분명히 밝혔다. 김생이 왕희지 글씨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왕희지와 당태종의 글씨가 크게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