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인사고과를 위한 근무 기간 파악방법에는 연(年) 단위의 차년법, 월을 단위로 하는 개월법(箇月法), 일을 단위로 하는 도숙법(到宿法)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이러한 제도가 있었는데 한(漢 : 文獻通考에는 舜帝) 이래로 3년마다 한 차례씩 고과를 실시하였다. 그 뒤 당대(唐代)에는 3회의 고과를 종합해 출척(黜陟 : 못된 사람을 내쫓고 착한 사람을 올려 씀)을 행하는 ‘삼재고적삼고출척법(三載考績三考黜陟法)’을 계승, 정비해 3년을 기간으로 하였다.
이어 송대(宋代)에는 1년 1고(考)를 행해 3고로 각각 출척을 행하는 연 단위의 출척법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당·송대의 제도를 본받은 고려에서는 모든 경·외관, 각전행수(各殿行首), 견룡(牽龍)·녹사·지인(知印)·군사 및 이전(吏典) 등을 연 단위로 직위 교체 또는 승진시켰다.
이 제도는 늦어도 문종대(1046∼1083) 이전에 완성되고, 충정왕대(1349∼1351)까지 계승되었다. 이어 공민왕대(1351∼1374)에는 내시다방(內侍茶房)·시위각사(侍衛各司)에 도숙법이 적용됨에 따라 차년법의 적용대상자는 경·외관리, 각전행수 및 이전 등으로 축소되었다.
1391년(공양왕 3) 다시 안렴사(按廉使)를 제외한 경·외관리와 이전이 개월법을 적용받게 됨에 따라 그 적용대상자가 크게 줄었고, 이것이 고려 말까지 계승되었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고려 말의 안렴사와 각전행수·견룡·녹사·지인의 근무 기간을 차년법에 의거해 파악하는 방법을 계승하였다.
1412년(태종 12) “의정부사인으로 충원되는 각전행수 등은 차년법에 따라 1년에 1, 2인밖에 거관(去官 : 다른 자리로 관직을 옮김)되지 못하나, 양가(良家) 자제로 충원되는 이전은 개월법에 따라 1년에 4, 5인이나 거관됨으로써 이전이 오히려 각전행수 등보다 우대되는 현 체제를 시정하라.”는 상계(上啓)에 의해 이전도 차년법을 적용받게 되었다.
안렴사는 1417년 도관찰출척사로 계승된 뒤 1448년(세종 30) 관찰사로 개칭되어 임기가 30개월로 연장됨에 따라 차년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 1454년(단종 2) 임기가 다시 1년으로 개정됨에 따라 차년법 적용대상으로 환원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찰사의 임기가 360일로 조정되고 각전행수 등에 속했던 녹사·지인 등이 서리로 일원화되어 도숙법에 준하도록 개정되면서 ≪경국대전≫에 모두 법제화되었다가 그 뒤 소멸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관찰사·도사 등은 『경국대전』에 임기가 360일로 규정되었다. 종래까지 임기가 30개월이던 외관은 1423년 6월에 그 임기가 60개월로 늘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기초로 『경국대전』에 당하수령은 1,800일(당상 挈家수령은 900일)로 규정되는 등 도숙법이나 개월법의 적용대상으로 모두 전환되었다. 그러나 1년이 12개월(365일)인 것에 비추어 60개월·360일·1,800일은 각각 5년·1년·5년으로 환산되어 차년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