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의 간섭이 시작된 이후 원나라에 대한 공물로서 매가 중요시되면서 1275년(충렬왕 1)경에 응방이 설치되었는데, 점차 그 세력이 커져가던 중 1279년에는 응방사(鷹坊使)·왕지사용별감(王旨使用別監) 등의 관직을 칭하게 되었고, 그 뒤로 매를 잡아들이기 위하여 각 지방에 착응별감을 파견하였다.
윤수(尹秀)·원경(元卿)·이정(李貞)·박의(朴義) 등 충렬왕 때 각 도의 응방을 관장하던 사람들이 사사로이 임명하여 파견하였으며,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각지에서 민간의 닭과 개를 함부로 잡아 매의 먹이로 하였으므로 그 폐해가 매우 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