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초 의정부의 차관인 종1품 의정부 찬성사의 약칭 또는 의정부의 차관인 좌·우찬성의 통칭이다. 이상(貳相) 또는 이재(二宰)라고도 한다.
의정부의 차관직으로 1415년(태종 15) 전년의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 실시와 관련된 의정부 기능의 약화에 수반된 관제 개혁으로 의정부 찬성사를 계승, 개칭한 동판의정부사(同判議政府事 : 종1품, 정원 2)가 좌참찬(종1품, 정원 1)과 우참찬(정2품, 정원 1)으로 세분화되었을 때, 좌참찬이 계승, 개칭되면서 성립되었다.
1437년(세종 19) 10월 전년 7월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가 부활되면서 의정부 기능이 강화되고 인원이 2인으로 증원되고 좌우로 세분되어 좌·우찬성으로 계승되면서 소멸되었다. 하위의 참찬과 함께 의정을 보필하면서 의정부사와 대소 국정의 논의에 참여하였다.
의정부 기능과 관련되면서 1401년(태종 1)부터 1414년까지, 1436년부터 이듬해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1414년 이후부터 1436년 사이에는 미약하였다.
의정부 찬성사의 약칭인 찬성은 1401년 7월에 전년 4월 이래로 계승된 의정부관의 문하부(門下府)적인 명칭을 의정부적인 명칭으로 개칭한 조처에 수반되어 문하시랑 찬성사(종1품, 정원 2)를 의정부 찬성사로 개칭하면서 비롯되었다.
1414년 4월 육조직계제가 실시되고, 의정부 기능이 약화되면서 의정부 관제가 축소되었고, 이 때 동판부사로 개칭되면서 소멸되었다.
좌·우찬성의 통칭인 찬성은 1437년 10월 찬성 1인이 2인으로 증원되고, 좌·우찬성으로 개칭되면서 성립되었다.
이후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시 근대식으로 관제가 개편되면서 의정·참찬 등은 총리대신으로 개칭되거나 혁거되었던 것과는 달리 계속 존치되었다.
다음해 의정부제를 내각제(內閣制)로 개편하고 칙임관(勅任官)에는 총리대신·총서(總書)만을 편제한 조처로 혁거되면서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