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소답동 패총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변한에서 가야에 걸친 시기의 조개더미.
이칭
이칭
마산서상리패총, 창원중동유적
유적
건립 시기
초기 철기시대
관련 국가
변한, 가야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창원소답동패총은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변한과 가야 시기의 조개더미이다. 창원가음정동패총, 외동성산패총과 같이 변한-가야의 조개더미 유적이다. 이 유적 인근의 창원도계동고분군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보아 창원소답동패총을 만들어 생활한 이들이 창원도계동고분군에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인근의 도계동, 중동, 반계동 유적이 발굴되며 창원소답동패총까지도 큰 범위에서 중동유적으로 포함되어 이해되고 있다. 이 유적군을 창원중동유적군으로 통칭할 수 있다.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변한에서 가야에 걸친 시기의 조개더미.
발굴경위 및 결과

창원소답동패총(昌原召畓洞貝塚)은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남쪽, 청동기시대 환호 유적으로 유명한 남산 정상부와 부산가도가 진해가도에서 갈라지는 높은 곳에 자리한다. 원래 이 지역을 ‘조개등이’라고도 불렀다.

1977년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의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소개되어 학계에 알려졌다. 최근까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나, 이전하면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창원중동유적 등으로 보고되었다. 발굴 결과 변한에서 가야에 걸친 시기의 조개더미, 집터 등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형태와 특징

남해안 일원에는 변한에서 가야에 이르는 조개더미 유적이 많이 있는데, 창원소답동패총 또한 이러한 유적군에 포함된다. 이 유적이 자리한 경상남도 창원시에도 비슷한 시기의 조개더미가 많이 확인되는데, 특히 창원가음정동패총, 외동성산패총 등지에서는 유사한 골각기(骨角器)와 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창원소답동패총, 창원가음정동패총, 외동성산패총 등은 모두 바닷가에서 떨어진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당시의 해안선을 복원해 보면 이 유적들이 형성될 무렵 마산만은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바닷물이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창원소답동패총의 동남쪽에는 창원도계동고분군이 있는데, 이곳은 변한의 나무널무덤에서부터 가야의 돌덧널무덤에 이르는 대규모 무덤 유적이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와 지리적 관계로 보아 창원도계동고분군은 창원소답동패총에 조개더미를 만든 이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창원소답동패총은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마산서상리패총이라고 불렀는데, 마산시가 창원시에 편입되면서 창원소답동패총이 되었다. 최근 인근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창원중동유적군으로 포함시킬 수 있게 되었다.

조개더미의 발굴 결과 다양한 동물 뼈와 굽다리접시를 비롯한 토기 등이 다량 출토되어 변한에서 가야로 전환되는 시기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창원의 가야』(창원시 · 창원대학교박물관, 2021)
『창원시 문화유적 정밀지표조사보고서』(창원시 · 창원대학교박물관, 1995)
박경원, 『경남(慶南)의 고적(古蹟)과 그 문화(文化)』(경상남도향토문화연구회, 1985)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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