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도계동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군.
이칭
약칭
도계동고분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가야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창원도계동고분군(昌原道溪洞古墳群)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군이다. 모두 네 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전체 158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널무덤 5기, 덧널무덤 86기, 돌덧널무덤 60기, 독무덤 5기, 흙무덤 1기, 돌널무덤 1기 등이다. 조성 시기는 2세기 중엽부터 5세기 후반까지이다. 무덤의 입지는 구릉 동쪽 하단부의 덧널무덤부터 서쪽 정상부의 돌덧널무덤으로 이동하면서 중심 묘제가 변천하는 양상을 보인다. 창원도계동고분군은 탁순국의 소재지로 비정되는 창원 지역 유력 집단의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군.
발굴경위 및 결과

창원도계동고분군은 모두 네 차례 발굴 조사되었다. 창원대학교(1986년), 동의대학교(1987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2002년), 두류문화연구원(2016년)에서 각기 조사되었다. 전체 158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널무덤 5기, 덧널무덤 86기, 돌덧널무덤 60기, 독무덤 5기, 흙무덤 1기, 돌널무덤 1기 등이다.

이 가운데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조성 시기는 2세기 중엽부터 5세기 후반까지이다. 무덤의 입지는 구릉 동쪽 하단부의 덧널무덤부터 서쪽 정상부의 돌덧널무덤으로 이동하면서 중심 묘제가 변천하는 양상을 보인다.

변천

널무덤부터 덧널무덤까지의 출토 유물을 근거로 단계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토기의 소성(燒成) 상태로 구분해 보면 와질토기(瓦質土器)가 주로 부장되는 단계와 경질토기(硬質土器)가 주로 부장되는 단계로 나누어진다. 와질토기가 출토되는 유구는 다시 유물의 조합상에 따라 2단계로 구분되어 모두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쇠뿔모양손잡이항아리, 화로모양토기 등과 함께 쇠칼과 손잡이가 둘로 나누어진 쇠투겁창, 슴베없는 쇠화살촉 등의 철기류가 부장된다. 쇠뿔모양손잡이항아리는 꼰무늬두들김에 가로줄을 돌려 삿무늬 효과를 낸 두들긴 수법으로 보면, 나무널무덤 단계에 보이는 수법과 같다. 쇠칼은 나무널무덤 출토품과 비슷한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폭이 좁고 별도의 손잡이 부분이 마련되지 않은 늦은 요소가 보이는 형태도 있다.

이와 같은 토기나 쇠칼의 형식을 보면 대체로 나무널무덤 단계의 출토품과 비슷한 특징을 보이기도 하지만, 늦은 요소들이 가미되고 있다. 특히, 화로모양토기와 같이 새로운 기종이 출현하는 점으로 보아 일반적인 나무널무덤 단계보다 다소 늦을 가능성도 있다. 1단계는 서기 2세기 중후엽으로 편년할 수 있다.

2단계에는 1단계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형이 나타나 기종 구성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앞 단계부터 출토되었던 화로모양토기는 동체부의 형태에서 상부가 강조된 역삼각형으로의 변화를 보이며 새로이 굽다리접시와 뚜껑있는굽달린입항아리 등이 부장된다. 2단계는 대체로 3세기 대로 편년된다.

3단계는 경질토기가 주로 부장되는 시기이다. 출토되는 토기 기종으로는 굽다리접시, 짧은목항아리, 소형입큰항아리, 소형그릇받침, 화로모양토기, 뚜껑접시 등이 있다. 굽다리접시는 모두 뚜껑이 없는 형태인데, 김해 · 부산 지역에서 주로 보이는 바깥으로 꺾인 굽다리접시가 확인된다. 3단계는 대체로 4세기 대로 편년된다.

형태와 특징

덧널무덤의 긴 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하다. 덧널무덤의 평면 형태로 보면 방형계 덧널무덤에서 장방형계 덧널무덤으로의 변화가 보인다. 창원도계동고분군 덧널무덤에서 특징적인 구조는 덧널 내 발아랫부분 유물부장 갱인데, 장방형의 구덩이를 개설하여 다량의 토기류를 매납하였다. 18기의 덧널무덤에서 발아랫부분 유물부장 갱이 확인되었다.

유물부장 구덩이는 덧널 내 피장자의 발아랫부분에 타원형 또는 말각방형, 장방형의 형태로 수직 혹은 오목하게 굴착하여 굽다리접시류, 항아리류, 그릇받침 등의 토기류를 부장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조사한 6호, 15호, 17호, 26호, 86-10호 덧널무덤은 말각방형으로 직경 5070㎝, 깊이 2028㎝로 수직으로 굴착하여 유물부장 갱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부장 갱의 깊이는 부장품의 내용과 연동된다. 내부에 매납된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등 대각을 가진 유물은 다리가 모두 구덩이 아래에 묻혀 있어 유물을 보다 안정적으로 부장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 및 부장 유물의 높낮이를 조절하기 위한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장 유물의 노출 상황과 수습 후의 양상을 볼 때 상자와 같은 특별한 시설을 마련하지 않고 그대로 부장품을 구덩이에 매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항아리와 같이 바닥이 불안정한 기물을 정치하기 위해 쇠도끼, 쇠낫 등의 철기를 항아리와 부장 갱의 모서리에 박아 넣은 것처럼 끼워 넣은 사례가 2002년 조사 6호, 26호, 86-10호 덧널무덤에서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물부장 갱을 가진 사례는 부산복천동고분군의 34호 덧널무덤, 4호, 6호, 12호, 30호 돌덧널무덤과 부산반여동고분군 23호, 부산당감동고분군 11호, 33호 등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부산복천동고분군 34호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이다. 따라서 덧널 내부 피장자의 발아랫부분에 수직으로 깊은 방형, 오목하고 얕은 타원형 부장 갱을 개설하여 유물을 부장한 사례는 5세기 대 창원도계동고분군 덧널무덤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원도계동고분군 덧널무덤 중 2002년 조사 4호, 6호 덧널무덤은 이중덧널의 형태를 띤다. 이 덧널무덤들은 북서 짧은 벽쪽에 부장 갱을 설치한 전형적인 도계동형 유물부장 갱이다. 내부 덧널은 부장 덧널과 일직선을 띠는 것으로 주 덧널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중덧널로 보는 근거는 안쪽 덧널 역시 시신만을 안치하는 기존의 나무널보다 규모가 크고 내부에 부장품이 들어가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한편, 1987년 조사 25호는 별도의 딸린덧널을 갖춘 덧널무덤이다. 주 덧널과 딸린덧널이 '日'자의 배치 구조를 가진 것인데, 주 덧널은 남동쪽, 딸린덧널은 주 덧널의 북서쪽에 인접해 설치되어 있다. 딸린덧널은 주 덧널에 비해 깊이가 훨씬 얕아 이중덧널이 층단을 이룬다.

영남 지역에서 이러한 형식의 이중덧널을 갖춘 덧널무덤은 김해칠산동고분군, 김해대성동고분군, 김해예안리고분군, 부산복천동고분군 등 김해 및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돌덧널무덤의 규모는 소형(길이 250㎝ 미만), 중소형(250400㎝), 중형(400550㎝) 등으로 구분된다. 구릉 정상부에 가까운 곳에서는 중소형 돌덧널무덤이 주로 분포하고 중형 돌덧널무덤은 대부분 북쪽의 구릉 사면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돌덧널무덤의 규모는 구릉의 정상부로 이동하면서 대체로 소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돌덧널무덤은 벽석의 축조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1유형은 벽석과 묘광 사이가 좁고 특별한 시설 없이 벽석만 설치된 것이다. 2유형은 벽석과 무덤구덩이 사이에 깬돌과 흙을 채워 넣어 평면상에서 벽석이 2열 이상의 형태로 확인되며, 비교적 큰 돌덧널무덤이 이에 속한다.

바닥 시설은 주검받침의 사용, 널받침의 사용, 무시설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널받침 사용 사례를 보면, 당시 돌덧널무덤 내에 나무널의 사용이 비교적 보편화되었음을 보여 준다.

2002년에 조사된 19호 돌덧널무덤은 능선 정선부(頂線部)에 입지한 대형의 이중덧널로 확인되었는데, 1986년에 조사된 3호 돌덧널무덤과 같은 유형이어서 주목된다.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등 다량의 토기류를 비롯하여 큰칼, 쇠도끼, 쇠화살촉 등의 무기류, 발걸이, 재갈 등의 마구류 및 장신구류가 일부 확인되었다.

돌덧널무덤의 조성 시기는 3단계로 구분이 가능하다. 1단계는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공존하는 시기로 5세기 전엽에 해당한다. 공반 유물은 가야 여러 지역의 토기 양식, 특히 함안 양식, 창녕 양식, 부산 양식, 고성 양식 토기 등 다양한 토기의 모방품과 이입품이 부장되고 있다.

2단계는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공존하는 시기이나 돌덧널무덤이 다수를 차지한다. 5세기 중엽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의 특징은 여러 가야 지역 양식 토기가 몸체와 굽다리 부분 등 각 부위별로 특징이 결합된 결합품과 더불어 이입품이 부장되고 있다. 특히, 소가야 양식 토기는 토착계 배신과 소가야 양식의 굽다리가 결합된 형식으로 나타난다.

또한 창원도계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의 몸체는 김해 양식 토기의 몸체와 비슷한 직립 아가리가 나타나는 공통적인 속성으로 추후 창원 지역과 김해 지역 토착 토기의 특징 파악에 중요한 속성으로 인지될 수 있을 것이다.

3단계는 돌덧널무덤만 조영된 시기로 창원도계동고분군의 하한 단계인 5세기 후엽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 해당되는 유구의 대부분은 구릉의 정상부와 남쪽에 집중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공반 유물은 신라토기 양식의 확산으로 굽다리접시의 경우 상하교호투창(上下交互透窓)이 정착되며 굽다리는 3단각에서 2단각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김해식 짧은굽다리접시와 소가야양식의 뚜껑접시 부장이 증가한다. 한편, 독무덤은 덧널무덤이나 돌덧널무덤에 딸린 배장묘적 성격을 가지는데, 합구식이며 소형 돌덧널무덤과 결합된 것도 확인된다.

의의 및 평가

창원도계동고분군은 2세기 중엽부터 5세기 대까지의 나무널무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의 변천을 계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창원 지역의 대표적인 무덤군이다. 탁순국(卓淳國)의 소재지로 비정되는 창원 지역 유력 집단의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창원 도계동·중동·반계동유적』(두류문화연구원, 2018)
『창원도계동유적』(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4)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창원도계동고분군』(동의대학교박물관, 1996)
『창원도계동고분군』 Ⅰ(창원대학교박물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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