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출신. 1899년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재의 이바노프스크 구역) 카자케비체보 마을로 이주하였다.
러시아 실과학교(實科學校)를 졸업하고 톰스크대학에서 1년간 수학한 뒤 교사로서 교육에 종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 11월 러시아 차르 군대에 징집되었다. 이르쿠츠크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보로 임관되어 제33 투르키스탄 독립보병연대에서 근무하였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즈음 군복무를 마치고 연해주로 돌아갔다. 1919년 6월 백위군 콜차크 부대에 징집되었으나 백위군으로 싸울 뜻이 없어 탈영, 예카체린부르크와 츄멘 등지에서 숨어 지냈다. 1920년 2월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 러시아공산당 시베리아국 조선분과 서기로 일하였다.
그 해 7월 러시아 내에 있는 조선인 공산주의단체들의 통합을 꾀해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한인 사회주의 단체 대표자회의에 옴스크공산당 고려족부(高麗族部) 대표 자격으로 출석했으며, 러시아어 서기를 맡았다. 이 대회에서 전로고려공산당 중앙총회를 결성하고 위원이 되었다.
1921년 3월 1일 이르쿠츠크 소재 한인들이 레닌구락부에서 개최한 고려혁명기념회(3·1운동)에 참석해 환영사를 행하였다.
같은 해 아무르주 자유시 조선인 혁명군사소비에트 정치부장이 되었다. ‘자유시사건’ 이후 10월 러시아 적군 제5군 부설 고려혁명군(혹은 조선독립보병여단) 정치부장이 되었다. 1921년 10월부터 1922년 1월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고려혁명군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였다.
1923년부터 2년 동안 연해주 공산당 집행위원회 간부, 코민테른 극동부 조선인부 간부 등을 역임하였다. 남긴 글로는 『동아공산』 12호에 보고한 「전로한인공산당제대의회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