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40년 부산에서 열린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 노다이의 부당 행위에 항의하여 일어난 항일학생운동이다. 1940년 11월에 경남 지역의 중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는 합동야외훈련대회와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육군 대좌 노다이 등 주최 측에서 민족 차별적으로 대회를 운영하였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부산공설운동장부터 시내까지 시위행진을 벌였으며 노다이 대좌를 비롯한 일본인들을 공격하였다. 부산에서 전개된 일제의 동원 정책에 저항한 대규모 학생 투쟁으로 평가된다.
정의
1940년 부산에서 열린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 노다이의 부당 행위에 항의하여 일어난 항일학생운동.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2일간 모의 전투 훈련을 마친 후 11월 23일 일제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에는 진주중학교, 마산중학교, 동래중학교, 부산중학교(일), 부산제2상업학교, 부산제1상업학교(일), 진주농업학교, 울산농업학교 등의 5학년제 중학교, 동래고등여학교, 부산항고등여학교[경남여고 전신], 부산고등여학교(일), 삼도고등실습여학교(일) 등의 여학교, 3년제 을종학교인 김해공립농업학교, 밀양농잠학교, 마산상업학교, 통영공립수산학교, 입정상업학교, 초량상업학교 등이 참여하였다. 대회 종목은 100m·400m 릴레이, 80m 장애물, 넓이뛰기, 높이뛰기, 턱걸이 등의 육상경기, 씨름, 줄당기기, 견인 경주, 담가 운반 등의 단체경기, 수류탄 던지기, 토낭 운반, 비상 소급, 무장 행군 등의 군사 경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주최측은 1회 대회 우승팀인 동래중학교를 비롯한 조선인 학교의 우승을 막고, 일본인 학교가 우승할 수 있도록 민족 차별적으로 대회를 운영하였다. 대회 입장 순서에서 일본인 학교에 이어 조선인 학교를 입장시켰고, 대회 운영도 일본인 학교에 유리하도록 편파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노다이 대좌에 의해 우승이 동래중학교에서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로 뒤바뀌어 발표되었다.
이에 조선인 학교 학생들은 대회 폐회식에서 일장기 하강을 외면하고, 일본 국가를 거부하였다. 대회 폐회 선언 뒤 학생들은 노다이 대좌를 비롯한 일본인들을 공격하였다. 부산공설운동장부터 시내까지 시위행진을 벌이면서, ‘조선독립만세’ ‘일본놈 죽여라’ ‘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무엇이 내선일체(內鮮一體)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한 경남 지구 위수사령관으로서 대회 총책임자인 일본군 대좌 노다이의 관사를 습격하고, 그를 구타하였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근대학생운동사』(김호일, 선인, 2005)
- 『부산지역 학생운동사』(강대민, 국학자료원, 2003)
- 『부산학생항일의거의 재조명』(부산학생항일의거기념논집편찬위원회, 계림출판사, 1992)
-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정세현, 일지사, 1973)
- 『부산학생사건정사』(부산학생사건정사편찬위원회, 1967)
- 「일제하 부산의 학생항일독립운동」(김의환, 『윤병석교수화갑기념한국근대사논총』, 지식산업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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