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설을 맞아 청도군 유호리의 청년 10여 명이 모여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으고, 1월 27일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결사의 이름은 ‘동쪽으로 진격하여 일본 제국을 무너뜨리자’는 의미로 동진회(東進會)라 하였다. 회장에 허남귤(許南橘), 총무에 이길우(李吉雨)를 선정하였는데, 허남귤은 경남 충무에서 한약방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었고, 이길우는 청도읍 유호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1942년 2월 15일 동진회 회원들은 동진회의 하부 조직으로 농민회(農民會)와 소년 독성회(少年獨成會)를 결성하였다. 1943년 9월 동진회는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50여 명이 체포되었고, 그 중 10명은 1944년 12월 재판에 회부되었다. 허남귤과 이길우 두 사람은 부산형무소에서 옥중 사망하였다. 이상도(李相道)를 제외한 나머지는 공판 계류 중 해방을 맞이하였다.
동진회는 일제의 군수품 수송을 방해할 목적으로 철도, 경찰, 관공서 등의 일제의 통치기관을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 또 농민회를 통해 농촌에 강요되는 황국신민화정책, 일상생활 통제의 국가총동원 체제 등에 저항하였다. 그리고 소년독성회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장차 동진회의 행동 대원으로 양성하고자 하였다.
동진회는 전시체제기 경북 청도에서 조직된 청년 비밀결사로서 농민회와 소년독성회를 통해 지하운동과 의식화 사업을 병행하였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이상도를 통해 재만독립운동 단체와도 연계를 추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족독립운동의 확산에 크게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