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가례실록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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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고출 / 책봉가례실록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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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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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부터 세조까지의 세자 책봉 · 가례 및 상왕에 대한 존호 추상(追上)에 관한 부분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초록한 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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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태조부터 세조까지의 세자 책봉 · 가례 및 상왕에 대한 존호 추상(追上)에 관한 부분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초록한 예서.
내용

1책. 필사본. 편자 및 편집연도는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 책은 첫머리에 체재를 풀이한 도식이 있다. 이어 1398년(태조 7) 영안군(永安君) 왕세자책봉 교문, 1418년(태종 18) 충녕대군(忠寧大君) 왕세자 책문, 1421년(세종 3) 원자(元子)의 세자책봉에 관한 예조의 계사(啓辭)와 의주(儀註)가 실려 있다.

1450년(문종 즉위년) 단종에 대한 왕세자책봉 책문·교문·의주, 1418년 태상왕존호(太上王尊號) 옥책문, 1424년 원경왕후(元敬王后) 존호 추상에 관한 예조의 계사·의주, 1457년(세조 3) 예종에 대한 왕세자책봉 의주, 동궁입학(東宮入學)시 종묘배알에 관한 의주, 1460년 세자가례에 관한 의주 등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세자책봉에 관해서는 1418년 이후부터 세자봉숭도감(世子封崇都監)을 설치하고 있다. 1418년에 추상된 태종존호는 성덕신공(聖德神功), 대비 존호는 후덕(厚德), 1424년에 추상된 원경왕후 존호는 창덕소열(彰德昭烈)이다.

1457년에 거행된 예종의 동궁입학의(東宮入學儀)는 보략(譜略)에 병술(丙戌, 1466년)로 되어 있으나 오록(誤錄)이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1460년 세자가례 때의 납징의(納徵儀)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종실의 장으로서 정사(政使)에 임명되었다. 가례의식에는 왕세자 친영의(親迎儀), 왕세자빈 조현의(朝見儀)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책봉·가례·존호추상 등에 관한 의궤가 정비되지 않은 조선 초기의 의전기록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로 꼽힌다.

참고문헌

『문종실록(文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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