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 가담해 구속되었다가 그 해 8월 6일 보석으로 풀려난 연희전문학교의 김상덕(金相德)은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에 가입, 친지인 권인채(權仁采)로부터 강원도에 애국단 지부인 도단(道團)·군단(郡團)·면단(面團)을 조직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 달 8일 강원도 철원에서 박연서(朴淵瑞)·강대여(姜大呂)·김철회(金喆會)·박건병(朴健秉) 등과 애국단 철원군단을 조직하였다. 군단장에 이봉하(李鳳夏), 서무과장에 강대여, 재무과장에 김완호(金完鎬), 통신과장에 박연서, 학무과장에 박건병, 외무부장에 이용우(李用雨)·김철회·오세덕(吳世悳)을 각각 선출하였다.
그 달 12일 상경한 박연서가 권인채의 주선으로 만난 신현구(申鉉九)의 권고를 받아들여, 애국단의 철원군단을 애국단강원도단(愛國團江原道團)으로 바꾸었다. 간부진은 단장 이봉하, 서무국장 강대여, 재무국장 김완호, 통신국장 박연서, 학무국장 박건병, 외무국원 김철회·이용우 등이었으며, 그 달 14일부터 애국단강원도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박연서 등은 도단의 활동자금을 각자 갹출하고 지방의 독립운동 상황을 조사해 임시정부에 보고하는 한편, 임시정부로부터 전달된 각종 문서를 반포하는 등 임시정부의 지시 및 명령을 이행하였다. 또한 한국이 독립할 때 즉시 행정사무를 접수할 준비까지도 진행하였다.
한편, 애국단강원도단의 조직을 확장하기 위해 조종대(趙鍾大) 등을 비롯한 단원들은 각 군을 순회, 원주·횡성·강릉·평창·울진·삼척·평해·영월·정선·고성·양양·금화 등지에 군단을 조직하거나 조직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1920년 봄 김상덕·박연서·강대여·김철회 등 23명이 일본경찰에 차례로 체포됨으로써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