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263㎝. 팔각원당형을 따르면서 새로운 양식이 도입된 부도이다. 지표에 높은 8각지대석이 있고 그 위에 하대석이 놓이는데, 하대석에는 8각의 높은 굄 위에 복판(複瓣) 단엽(單葉) 16판(瓣)의 복련(覆蓮)이 조각되었다.
중대석은 8각으로 배가 불러서 편구형과 비슷하며,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그 안에 사자와 운룡(雲龍)을 교대로 조각하였다. 상대석에는 하대석과 같은 양식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여 마치 하대석을 뒤집어놓은 것 같다.
탑신(塔身)은 구형(球形)에 가까워 회암사지 부도(檜巖寺址浮屠)를 연상하게 하나 그보다는 8각의 형태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우각(隅角)마다 반룡(蟠龍: 아직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땅에 서려 있는 용)이 돋을새김된 원주(圓柱)를 강한 부조로 모각하였고, 각 면에는 안상 안에 무기를 든 신장상(神將像)을 1구씩 조각하였으며 기둥 위에는 목조 건물의 가구(架構)를 모각하되 옥개석(屋蓋石)의 이면까지 연장되었다.
옥개석은 8각으로 이면에는 탑신에서 연장되는 목조 가구가 모각되고 밖으로 16판의 단엽 연화가 조각되었으며, 낙수면(落水面)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높은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이 내려와서 끝에는 용두(龍頭)가 조각되었다.
처마 밑은 호선(弧線)을 그려서 추녀가 높이 들렸고, 꼭대기에는 8판 복련이 조각되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복발(覆鉢)·앙화(仰花)·화염보주(火焰寶珠)가 차례로 얹혀 완형을 이루었다. 이 부도는 원위치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고, 상륜부는 지하에 파묻혔던 것을 원위치에 복원하였다.
또한, 지대석 밑 지하와 탑신 상면에는 각각 사리공(舍利孔)이 있으나 장엄구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도난당했다. 보각국사 혼수(混修)의 묘탑인 이 부도는 옆에 있는 탑비에 의하여 1394년(태조 3)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부도의 귀중한 일례로서 회암사 부도·신륵사 보제존자석종(神勒寺普濟尊者石鐘) 앞 석등 등과 양식상 상통하는 바가 있어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표본적 유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