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청진 시가의 북쪽 교외에 해당하는 청암면 반죽동에서 금광이 발견된 다음부터 금을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박창호(朴昌浩)가 1926년 8월에 이 광산을 발견하였다. 그는 1928년 2월에 인가를 얻고 채금을 시작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우리나라 굴지의 큰 금광산으로 부상하였다.
광구의 동부 일대에는 화강암, 서부에는 고기의 퇴적암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사이를 동쪽에서부터 분암(玢岩)·사문암(蛇文岩)·분암·사문암의 순으로 서로 평행하는 암맥(岩脈)이 발달하고 암맥 사이에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발달하고 있다. 이 함금석영맥은 제1맥, 제2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맥은 노두의 길이가 1,300m 가량이다.
이 중에서 부광부(富鑛部)는 약 350m이며, 함금맥의 너비는 3∼60㎝로, 평균 18㎝ 가량이다. 북부에서 주향은 북30∼35°서, 경사는 남서70°를 이룬다. 또한 남부에서는 주향이 거의 남북이고, 경사가 서80°∼수직에 가깝다. 제2맥은 제1맥의 상반(上磐) 20∼40m 간격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주향·경사·맥폭 등이 제1맥과 거의 비슷하다.
광석은 백색 석영에 소량의 유화철광·방연광·섬아연광·황동광 등을 함유하고 있다. 대체로 금의 낱〔粒〕은 작으나 함금 품위는 아주 높으며, 부광부는 만분(萬分)대를 나타내고 있다. 채광은 폭파법에 의하는데, 맥석은 채광하기 쉬워 폭약을 쓰는 경우는 적고, 갱도채굴(坑道採掘)과 상향·하향 계단채굴(階段採掘)을 하고 있다.
이 광산에는 청화제련법(靑化製鍊法)의 채광 시설이 갖추어졌으며, 1932년에는 30.2㎏ 가량의 금이 산출되었다. 한편 이 광산은 수성천(輸城川) 지류 계곡을 따라 웅기가도(雄基街道)에 면하며, 청진에 가까운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