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상감 국화모란당초문 모자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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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유물
문화재
고려 시대의 청자 합.
이칭
이칭
청자 상감 모자합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간송미술관)
목차
정의
고려 시대의 청자 합.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모합의 높이 8.4㎝, 지름 19.1㎝. 화형자합(花形子盒)의 높이 3.1㎝, 지름 7.9㎝. 능형자합(菱形子盒)의 높이 3.0㎝, 길이 7.8㎝. 간송미술관 소장. 큼직한 원형의 모합 안에 국화형자합 하나를 중심으로 4개의 능형자합을 두른 모자합이다.

모자합 혹은 합형의 그릇들이 고려시대부터 다수 전해지는데, 이러한 기형은 금속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나전칠기(螺鈿漆器)로도 만들어졌다. 특히 소형의 모자합은 당시 여성들의 화장품을 담는 용기로서 제작·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모합 뚜껑의 중심에는 흑백상감된 사릉형문(四菱形文) 안에 국판(菊瓣) 하나가 표현되었고 이를 원심으로 국화·연화·모란당초문대가 흑백상감되었다. 이 뚜껑의 측면에는 백상감 뇌문대(雷文帶)를 둘렀고, 뚜껑을 얹으면 이와 맞대어지는 밑짝의 바깥면에도 역시 백상감된 당초문대를 포치하여 문양의 조화를 꾀하였다.

자합은 뚜껑의 둘레를 따라 흑백의 겹선으로 윤곽을 두었고 이 안에 모란 절지(折枝)가 각기 하나씩 상감되었다. 정연한 구성 안에서 다양하고 변화 있는 문양 표현이 모색된 것으로, 여성들이 쓰는 용기에 걸맞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면모가 엿보인다.

유약은 녹색을 띤 회청색으로 맑고 투명하며 부분적으로 성긴 빙렬이 보인다. 모합 뚜껑의 안쪽과 밑짝의 굽 밑에 규석 받침자국이 5개씩 있으며, 자합 굽에도 각기 세 곳에 규석 조각을 받쳐 번조한 흔적이 남아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청자 모자합 안에 장방형의 동경(銅鏡)과 은제침통(銀製針筒)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합도 화장품 용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 보물: 토기·도자기』(문화재청, 2015)
『한국의 미』청자(최순우 감수, 중앙일보사, 1985)
『간송문화』6(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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