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1.5㎝, 입지름 7.5㎝, 밑지름 15.8㎝. 간송미술관 소장. 중국에서 전래된 매병은 고려에 와서 더욱 세련된 형태로 활발히 제작되었다. 매병의 용도는 ‘사온서(司醞署)’ 또는 ‘덕천(德泉)’과 같은 관사명이 있는 14세기 청자매병의 예로 보아 주기(酒器)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매병도 문헌 · 회화 · 묘벽화 등 여러 자료를 통하여 주기(酒器)로 사용되었던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이 매병은 전성기의 청자매병에 비하여 아랫부분이 길어지고 광구형(廣口形) 아가리 형태가 무딘 감이 있으나, 남아 있는 완형의 청자상감 매병 중에서는 드물게 큰 것이다.
문양은 아가리 주위에 비교적 큰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를 상감하고, 몸체 아랫부분에는 뇌문대(雷文帶)와 중연판문대(重蓮瓣文帶)를 둘렀으며, 이들 종속문양을 제외한 넓은 몸체 전면에 덩굴진 포도잎과 열매를 가득 장식하였다. 이들 문양에는 모두 백상감기법이 사용되었다. 다만 포도 열매만은 백상감으로 동그란 무늬 도장을 찍고 그 안에 검은 점을 하나씩 상감하였다.포도 덩굴 잎새는 두껍게 백토상감하여 마치 백퇴화문(白堆花文)처럼 보이는 특이한 상감 효과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몸체 아랫부분이 길어진 점이나 어깨의 여의두문이 다소 커지면서 그 윤곽선이 겹선으로 처리된 점 등은 대체로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의 청자상감 매병에서 보이는 양식적인 특징으로 여겨진다.
정선되지 않은 태토의 질이나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굽다리 등은 이 매병이 고려청자의 전성기에서 다소 벗어난 시기에 제작되었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엷은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의 유가 약간 두껍게 입혀졌고 그물 모양의 빙렬(氷裂)이 보인다. 유약이 충분히 용해되지 않아 투명도가 적으며 흘러내리거나 두껍게 몰린 부분이 있는 등 유약의 분포가 고르지 않다. 굽 밑바닥에 6개의 비짐돌 받침을 괴어 번조되었다. 이러한 유태와 문양을 지닌 파편이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