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가 시굴해 보고함으로써 알려졌다. 그 후 1946년과 1956년 2차에 걸쳐 북한학자들에 의해 발굴 조사되면서 농포 유적으로 알려졌다. 유적은 청진평야의 서쪽 끝 강덕(康德) 뒷산의 표고 약 30m 정도인 소구릉의 북쪽 경사면과 남쪽 경사면에 있다.
1933년 요코야마가 시굴한 지역은 30㎝ 정도의 표토(表土) 아래 약 60㎝ 두께의 포함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1956년에 실시된 발굴에서는 4개 지점을 조사하였다. 3개 지점은 지표 아래에서 단일문화층(單一文化層)을 이루고 있었으며 1개 지점은 패총 유적이었다.
유물로는 흑요석제의 타제석기가 가장 많으며 마제석기는 극히 적어 석부(石斧)·석촉(石鏃) 등 몇 점뿐이다. 출토유물 중 석촉류의 수렵도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 즐문토기(櫛文土器)·무문토기 등과 토제품(土製品)·골각기류가 많이 발견되었다.
흑요석기는 소기(搔器)를 비롯해 찔개·조각칼·삼각형 창끝도 있고 인부(刃部)가 칼날같은 것, 톱날같은 것(石鋸) 등 석인(石刃)에 가공한 석기가 많다. 골각기류는 첨두기(尖頭器)가 대부분이다. 종류는 바늘·송곳·작살·조립식조구(組立式釣具) 등의 돌자용 어구류(突刺用漁具類)와 멧돼지 이빨로 만든 토기시문구(土器施文具)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토제품으로는 방추차와 어망추가 대부분이다. 토제인형과 개와 같은 동물의 조소품(彫塑品)도 발견되었다. 토기류는 약간의 무문토기 중 채문토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즐문토기계통이다. 즐문토기의 저부(底部)는 모두 평저(平底)로 간혹 굽이 있는 것도 보인다. 토기의 종류는 호(壺)·옹(甕)·발(鉢)·잔(盞)·접시 등 다양하다. 대부분이 구연부(口緣部)에서 약간 사이를 띄우고 기복부(器腹部) 상단 쪽에 횡으로 문양띠[文樣帶]를 돌린 것이 공통된다.
출토유물을 통해 이 유적의 성격을 살펴보면, 검은개봉·삼봉(三峯)·원수대(元帥臺) 유적 등과 함께 뇌문을 비롯한 횡대문토기(橫帶文土器)·골각기·타제석촉 등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방의 전형적인 중기 즐문토기 유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유적은 연해주(沿海州)지역과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지역의 앙앙치(昻昻溪) 유적에도 분포되어 있어 이 일대가 같은 문화권이었음이 확실하다.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으나 서포항(西浦項) 유적 4·5기층에서 이러한 뇌문토기가 처음 보이고 있고, 토기에서 구연부의 문양이 소멸하는 점 등으로 보아 서기전 2000년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