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7.1㎝, 입지름 15.2㎝, 밑지름 16.7㎝.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안으로 약간 기우는 듯한 직립된 아가리 부분은 풍만한 어깨로 이어지고, 몸체 아래에서 잘록해진 허리는 급히 반전하여 꺾여서 직선으로 굽에 이르는 특이한 형태의 항아리이다. 이와 같은 형태는 1489년(성종 20)에 제작된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국보, 1974년 지정)와 매우 비슷하다.
문양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는 풍경 속에서 독서와 풍류를 즐기는 인물들을 주제로 하였는데, 노송(老松) 아래에 인물이 앉아 있으며, 오른쪽의 둥글게 휜 대나무 밑에는 거문고를 든 동자를 거느린 한 선비가 거닐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문양의 배치와 화풍은 조선 중기 화단을 풍미하였던 절파화풍(浙派畵風)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인물과 나무를 묘사하는 방법이나 각각의 소재를 배치하는 구도는 16세기 후반 조선시대 화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이경윤(李慶胤)의 전칭 작품들과 매우 비슷하여, 이 항아리의 제작 시기는 대체로 16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된다.
청화의 발색은 15세기 청화백자에 보이는 대체로 진하고 선명한 발색에 비하여 조금 엷고 흐린 색조를 보인다. 회백색의 태토에 약간 담청색을 띤 백자유가 전면에 골고루 입혀졌으며 빙렬은 없고 유약의 광택도 좋은 편이다. 굽의 안쪽 바닥을 약간 파내어 넓은 굽다리를 형성하고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번조과정에서 굽이 두꺼워 터진 곳이 있으며 구연부와 굽의 일부가 수리되었다. 제작지는 16세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운영되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으로 보이나 확실한 지역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