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20일 육군본부로부터 한·만 국경선으로 진출하라는 명령을 받은 국군 제2군단은 제6사단과 제8사단에 희천과 온정리를 경유, 압록강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23일 공격제대를 편성한 제6사단은 우일선의 제7연대를 풍장과 고장을 경유하여 초산으로 진격하고, 좌일선인 제2연대를 온정과 북진을 경유해 벽동을 점령하게 하였다.
국군의 선봉부대로 나선 제6사단 제7연대는 24일 오전 7시에 공격을 개시하여 25일 오후 6시 30분경에 고장을 점령하였다. 고장에서 국경선까지의 거리는 불과 30㎞에 불과하였다. 26일 오전 7시 제7연대는 압록강을 향한 마지막 진격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날 새벽에 첫눈이 내려 산야가 하얗게 뒤덮인 가운데 제7연대 제1대대가 초산을 향해 나갔다. 이 무렵 초산 일대에는 북한군 제8사단 소속의 혼성부대가 집결하고 있었는데, 병력이 연대규모였다. 제7연대 제1대대는 초산 남쪽 6㎞ 지점에서 이들과 조우해 한 시간 반가량의 격전을 전개하여 격퇴시켰다. 이 교전을 끝으로 북한군의 저항은 사라지고 제1대대는 초산읍에 도달하였으며, 제1대대의 첨병소대는 압록강변의 초산에 도착하여 강변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때가 10월 26일 오후 2시 15분경이었다.
이 전투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전선에서 반격작전을 개시한지 41일 만에 한·만 국경선에 도달하게 되었다.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의 초산 점령은 즉각 후방지역에 알려졌고 통일을 염원하던 전 국민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제7연대 제1대대는 최초로 한·만 국경선에 도달한 선봉부대가 되었다.
제6사단 제7연대 제1대대가 초산을 점령한 1950년 10월 26일은 온 국민에게 꿈에도 잊지 못할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일 이루어진 것 같은 감격의 일순간을 맞이하게 하였던 날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