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주(公州).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곧 이를 후회하고 무신이 될 것을 꺼려 비변사낭관·선전관 등에 임용되었어도 모두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관찰사 박태항(朴泰恒)이 그의 이름을 듣고는 불러 막하에 두고 예우하였으나, 청렴하여서 관의 공물은 일체 받지 않았다. 그 뒤 함경도관찰사 홍치중(洪致中)의 비장(裨將)이 되었고, 이어 중군으로 결원 중인 판관의 직무를 대행하였다.
뒤에 감찰을 지내고 사직하여 고향에 돌아갔다가 조정에서 청렴한 인재를 구할 때 천거되어 강진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현감으로 재직하다가 4개월 만에 관에서 죽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었으므로 강진 고을 사람들이 돈을 거두어 비용을 마련하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