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지돈녕부사, 동지중추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1441년까지 호조참판(戶曹參判)·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동지총제·중군총제·개성부부유후(開城府副留後)·예조좌참판(左參判)·인수부윤(仁壽府尹)·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형조좌참판·한성부윤(漢城府尹)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중추부사(中樞副使)를 거쳐 정2품계에 오르면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승직하였다.
이 중 1443∼1434년과 1439년에는 각각 사은부사(謝恩副使)와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444년 인수부윤이 되고, 이후 세종 말까지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종1품계에 오르면서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승직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 판돈녕부사로서 궤장(几杖)을 받았고, 곧 치사(致仕)했다가 졸하였다. 사후에 세종조의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청렴결백하고 공평무사한 정사로 상하의 인망이 높았다 한다. 시호는 양도(良度)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청선고(淸選考)』
- 『전주최씨세보(全州崔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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