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범숙(範叔). 아버지는 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 최유경(崔有慶)이고, 어머니는 고려평장사(高麗平章事) 김묘(金昴)의 딸이며, 부인은 밀직부사(密直副使) 박가흥(朴可興)의 딸이다.
고려말에 부음(父蔭)으로 출사하였다. 1393년(태조 2) 형조의랑(刑曹議郞)으로서 실행(失行)한 세자빈 유씨의 죄를 청한 일로 태조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하였다. 1426년(세종 8)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임명되고, 다음 해 이조참의를 거쳐 종2품계에 오르면서 삼군부우군동지총제(三軍府右軍同知摠制)에 승직하였다.
이어 1441년까지 호조참판(戶曹參判)·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동지총제·중군총제·개성부부유후(開城府副留後)·예조좌참판(左參判)·인수부윤(仁壽府尹)·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형조좌참판·한성부윤(漢城府尹)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중추부사(中樞副使)를 거쳐 정2품계에 오르면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승직하였다.
이 중 1443∼1434년과 1439년에는 각각 사은부사(謝恩副使)와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444년 인수부윤이 되고, 이후 세종 말까지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종1품계에 오르면서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승직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 판돈녕부사로서 궤장(几杖)을 받았고, 곧 치사(致仕)했다가 졸하였다. 사후에 세종조의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청렴결백하고 공평무사한 정사로 상하의 인망이 높았다 한다. 시호는 양도(良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