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헌납, 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준경(俊卿)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갑자사화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503년(연산군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헌납
  • 출생 연도1458년(세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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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헌납, 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준경(俊卿). 최하(崔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최만리(崔萬理)이고, 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 최연(崔堧)이며, 어머니는 송공형(宋公珩)의 딸이다. 부인은 우인손(禹燐孫)과 교위 이근선(李根善)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86년(성종 17)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출사하였다.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에 제수되고, 1492년 선무량수사간원정언(宣務郞守司諫院正言)에 승직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병조좌랑(兵曹左郞)을 거쳐 사간원헌납에 제수되었다가 ‘군왕이 야간에 타위(打圍: 사냥)를 행함은 옳지 못하다.’고 상계한 일로 연산군의 노여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곧 복직되고 1498년(연산군 4) 헌납을 거쳐 군수로 파견되었다가 임지에서 졸하였다. 사후인 1504년에 갑자사화가 일어나면서 이전에 연산군의 ‘야간 타위’가 불가함을 제일 먼저 제기하였던 일로 논죄되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1506년(중종 1)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 버림)되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청선고(淸選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해주최씨세보(海州崔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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