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준경(俊卿). 최하(崔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최만리(崔萬理)이고, 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 최연(崔堧)이며, 어머니는 송공형(宋公珩)의 딸이다. 부인은 우인손(禹燐孫)과 교위 이근선(李根善)의 딸이다.
1486년(성종 17)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출사하였다.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에 제수되고, 1492년 선무량수사간원정언(宣務郞守司諫院正言)에 승직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병조좌랑(兵曹左郞)을 거쳐 사간원헌납에 제수되었다가 ‘군왕이 야간에 타위(打圍: 사냥)를 행함은 옳지 못하다.’고 상계한 일로 연산군의 노여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곧 복직되고 1498년(연산군 4) 헌납을 거쳐 군수로 파견되었다가 임지에서 졸하였다. 사후인 1504년에 갑자사화가 일어나면서 이전에 연산군의 ‘야간 타위’가 불가함을 제일 먼저 제기하였던 일로 논죄되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1506년(중종 1)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 버림)되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