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춘추관편수관, 여주목사,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6년 문과중시에 3등, 계속해서 발영시(拔英試)에 2등으로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의 혜택을 입었다.
1470년(성종 1) 형조좌랑·경연시독관에 개수(改授)되면서 춘추관기주관이 되어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수에 참여하고, 실록편수가 끝난 뒤 1계(階)가 가자(加資)되었다.
1472년 사헌부지평, 이후 예문관교리·경연시독관·경연시강관 등을 역임하고, 1476년 12월에 찬진(撰進)된 『삼국사절요』의 편찬에 예문관부응교로서 참여하였다. 1477년 예문관직제학·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이듬해 찬진된 『동문선』의 편집에 참여하고, 같은 해 통정대부에 오르면서 여주목사(驪州牧使)로 파견되었다.
1479년 “두량(斗量)을 부정하게 사용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그 이듬해 홍문관부제학으로 복직되었다. 일세의 명현이었다는 평판과 높은 시격(詩格)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 저서로는 1813년(순조 13)에 간행된 『소요재집』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소요재집(逍遙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동잡록(海東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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