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지내시부사, 판내시부사 등을 역임한 환관.
생애 및 활동사항
1453년(단종 1)경에는 행동판내시부사에 체직되고, 계유정변(癸酉政變)에 기여한 공으로 전지가 사급되기도 하였다. 1455년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추종하고, 문종흉서 이래로 궁중 내의 일을 전횡하였다.”고 논죄되면서 고신(告身)을 몰수당하고 출신지에 부처되었다.
곧 대간(臺諫)의 가죄(加罪)요청에 따라 변방의 관노(官奴)에 영속(永續)되면서 가산을 적몰(籍沒)당하였다. 1468년(세조 14) 세조의 중병치료를 구하기 위한 대사(大赦)에 따라 사면되면서 고신을 돌려 받고, 곧 복직되었다.
1482년(성종 13) 나이 70이 넘고 환관 중 가장 나이가 많다 하여 특별히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서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가 졸하였다. 기민하고 영민한 자질로 시종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국왕의 최측근에 위치하면서 장기간 국왕과 승정원(承政院), 승지(承旨) 및 백사(百司), 백관(百官) 간에 오가는 각종 명령을 전달하는 승전색(承傳色)의 직임을 수행하고 내시부를 지휘하였다.
동시에 1444년과 1449년에 각각 충청·전라도 등지에 파견되어 그 도의 관찰사(觀察使)와 함께 대군(大君)의 배우자를 간선(揀選)하는가 하면, 1450년(문종 즉위)∼1452년(문종 2)과 1453년(단종 즉위)에 걸쳐 각각 시릉(侍陵) 환관이 되어 세종릉과 문종릉을 수호하였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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