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화(江華). 할아버지는 밀직제학(密直提學) 최수진(崔秀眞)이고, 아버지는 부사(副使) 최항(崔恒)이다.
1430년(세종 12)부터 명사(明使) 진립(眞立)의 청에 따라 승문원(承文院)에서 한훈(漢訓: 중국 음운)을 교육받고, 한어(중국어) 통역관으로 출사하였다. 1457년(세조 3) 오위진무소행사직(五衛鎭撫所行司直)으로서 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468년 사역원정(司譯院正)으로서 성절사(聖節使)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권각(權恪)의 통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후 1482년(성종 13)까지 1469년(예종 1)∼1470(성종 1), 1475년, 1476년, 1480년 12월∼1481년, 1482년 등에 걸쳐 명에 파견된 정조사(正朝使)·주문사(奏聞使)·성절사(聖節使) 등의 통사가 되어 북경을 왕래하였다.
또, 1470년, 1471년, 1479년 윤10, 1479년 12월∼1480년 1월, 1480년 10월∼12월 등에 걸쳐 표류하거나 여진에서 탈출해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의 송환을 위해 요동도지휘사(遼東都指揮司)에 파견된 한인해송사(漢人解送使) 등이 되어 요동을 내왕하고, 요동과 야인지역 등의 정세를 탐문해 보고하였다.
이 중 1475년에는 주청사(奏請使) 우의정(右議政) 김질(金礩)의 통사로서 의경왕(懿敬王, 성종의 생부)의 시호를 추증하고 인수왕비(仁壽王妃, 성종의 생모)의 존호를 명나라에 승인받는 데 기여한 공로로 토지 10결(結)이 하사되었다.
한어에 능통해 세조∼성종대 승문원의 한학 교육과 각급 사신을 수행하면서 대명외교 및 대여진정책의 수립 등에 공헌을 많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