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이괄의 난, 병자호란 당시의 의병.
개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주극(柱極). 호는 동계(東溪). 영의정 최항(崔恒)의 후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가동(家童)과 민병(民兵) 300여 명을 거느리고 길마재[鞍峴]싸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진위원종공신(振威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그 뒤 태인의 동계(東溪)에 은거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시 백함생(白咸生)과 함께 강화도로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정읍에 있는 모충사(慕忠祠)에 백함생과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매산집(梅山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