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주극(柱極). 호는 동계(東溪). 영의정 최항(崔恒)의 후손이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가동(家童)과 민병(民兵) 300여 명을 거느리고 길마재[鞍峴]싸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진위원종공신(振威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그 뒤 태인의 동계(東溪)에 은거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시 백함생(白咸生)과 함께 강화도로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정읍에 있는 모충사(慕忠祠)에 백함생과 함께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