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선생 묘 ( )

목차
관련 정보
최익현 선생 묘
최익현 선생 묘
근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최익현의 무덤.
목차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최익현의 무덤.
내용

1982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해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공부한 후, 1855년(철종 6)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정자로 출사해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불의와 부정을 척결해 자신의 강직성을 발휘하였다.

특히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해 대원군이 하야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민씨 일족의 옹폐(壅蔽: 웃사람의 총명을 막아서 가림) 비난 상소, 병자수호조약 체결 반대 상소 등으로 제주도·흑산도 등지로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단발령이 단행되자, 상소를 통해 시폐의 시정과 항일척사운동에 앞장섰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진충보국(盡忠報國)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지 대마도(對馬島) 옥사에서 순국하였다.

최익현의 묘는 본래 1907년에 논산시 노성면의 국도변에 마련했었다. 그러나 참배객이 끊이지 않자 일제의 명령으로 1910년에 오지인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로 이장되었다.

최익현 선생의 묘 좌측으로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방형의 화강석재 대좌와 오석의 비신, 옥개형의 화강석재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묘의 앞에는 석상이 놓여 있으며 묘역의 앞 좌우로는 높이 1m정도의 석주를 세우고 있다.

또한 묘의 입구에는 1973년 4월 9일 예산 모현사업회(慕顯事業會)에서 건립한 최익현의 춘추대의비가 서 있다. 이 춘추대의비는 화강석재의 대좌와 이수, 오석의 비신 등 3매의 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좌는 방형의 지대석 위에 두 단이 올려져 있고, 이 대좌 위에 ‘勉菴崔益鉉先生春秋大義碑, 李瑄根 撰, 金基昇 書(면암최익현선생춘추대의비이선근찬김기승서)’라는 각서가 전면에 새겨진 비신이 올려져 있다. 비신의 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수가 올려져 있다.

대의비의 주변은 잔디를 깔고 철책으로 보호시설을 해서 깨끗이 보호되고 있고 뒤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충청남도, 1996)
『충남지역의 문화유적』9(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5)
『예산의 맥』(예산향토사발굴조사단, 1991)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임선빈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