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강원도관찰사, 개성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사간원정언이 되어 이유도(李有道)를 탄핵했다가 송화현감으로 나갔다. 곧 돌아와 이조좌랑·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사간·홍문관교리 등을 거쳐 1635년 승지가 되었고, 1638년 병조참의·대사간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이어서 1641년 우부빈객(右副賓客)으로 왕세자와 함께 심양(瀋陽)에 있다가 용골대(龍骨大)의 청병(淸兵)과 동행, 귀국하였다.
1644년 동지 겸 세폐사(冬至兼歲幣使)로 연경(燕京)에 다녀와 대사성이 되었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1648년 이조참판이 되었으며 효종의 즉위와 더불어 도승지가 되어 측근에서 왕을 보살폈다. 1650년(효종 1) 경기도관찰사·이조참판을 거쳐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가 되었으나, 이듬해 이조참판 때 전형(銓衡)에 실정(失政)이 많았음을 이유로 간원(諫院)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653년 영해부사로 복직되어 곧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1655년 개성유수가 되었다. 이 때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주리는 처참한 상황을 보고하고 해서연변(海西沿邊) 열읍(列邑)의 창곡(倉穀) 300∼400석을 옮겨 쓰게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에 협조해줄 것을 상소, 왕의 윤허를 받았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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