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화(江華). 자는 사함(士涵). 아버지는 최선계(崔善繼)이다.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광해군대에 성균관직강·사헌부지평으로 있으면서 폐모론을 주도하였다.
그 뒤 장령·사예(司藝) 등을 지내면서 1620년(광해군 12)에는 무과의 폐단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인조반정 뒤에는 이이첨(李爾瞻)의 문객(門客)이라 하여 과방(科榜)에서 이름을 삭제당하는 한편, 파직되어 위리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