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한산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시 가운데 「응장자호운(應長者呼韻)」은 일곱 살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영사(詠史)」·「독사(讀史)」·「애강도(哀江都)」 등의 시와 「정유수성친정소(丁酉守城親征疏)」 등의 문과 함께 ‘큰 포부와 남자다운 기상을 담은 시문’이라는 세평을 듣는다. 「자견(自遣)」·「산중(山中)」·「우제(偶題)」·「낙화(落花)」·「자소(自笑)」·「백호음(白虎吟)」·「자도(自悼)」·「견민(遣悶)」·「기회(寄懷)」 등의 시도 장엄하고 웅혼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는 애타는 절규가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다만 이러한 자탄과 자조를 시어로써 형상화해 승화시켰다.
소의 「청사수친정소(請死守親征疏)」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올린 상소다. 임금은 결코 백성을 버려 두고 도망해서는 안 되며 직접 진두지휘하에 서울을 사수할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 송에는 「숭유중도송(崇儒重道頌)」이 있고, 잠에는 「유비무환잠(有備無患箴)」·「심전잠(心戰箴)」·「피세잠(避世箴)」이 있다.
2편의 의작인 「의오총병전위문(擬吳總兵餞慰文)」·「의병조청어육진연강요해처축성설책이비불우전(擬兵曹請於六鎭沿江要害處築城設柵以備不虞箋)」 등은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자원하여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창녕 화왕성(火旺城)전투에 참전한 저자의 문무를 겸한 재질과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잡저에는 「석상제명기(石上題名記)」·「세한설(歲旱說)」·「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갑오기사(甲午記事)」·「사지주선생사학사(謝地主先生賜學舍)」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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