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신매리 석실 고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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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신매리 석실고분
춘천 신매리 석실고분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 봉토석실분.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춘천신매리석실고분(春川新梅里石室古墳)
지정기관
강원도
종목
강원도 시도기념물(1982년 11월 03일 지정)
소재지
강원 춘천시 서면 신매리 177-1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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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 봉토석실분.
개설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기. 1982년 3월 고분이 있는 신매지구 농경지 정리작업 중에 고분의 천장에 놓였던 뚜껑돌〔蓋石〕이 밀려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고분은 1982년 3월 20일부터 3월 31일까지 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긴급 수습발굴조사를 실시함으로써 고분의 내용이 밝혀지게 되었다.

내용

규모는 주실의 길이가 190㎝, 너비 138㎝, 최대 높이 130㎝이고, 연도는 길이 200㎝, 너비 80㎝, 높이 90㎝이다. 고분 내에서는 유물이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으나 남녀 두 사람의 뼈가 발견되어 합장묘임을 알게 되었다.

고분 내부의 바닥에 시체를 올려놓기 위해 마련된 시상대(屍床臺)는 작은 막돌을 깔고 틈새와 막돌 위로 회(灰)를 메워 발라 두께가 10㎝ 정도 되었다. 이 시상대 외의 바닥도 전면에 회를 5㎝ 두께로 깔았다.

내부 네 벽의 이음새에는 회를 두껍게 발라 서로 엉키게 해서 벽을 튼튼하게 유지하도록 하였다. 축조방법은 연도부(羨道部)의 양벽을 2단으로 쌓았고, 시체를 놓아두는 주실(主室)의 벽은 3, 4단으로 쌓아올렸다. 모든 벽은 비교적 큰 자연석과 냇돌을 사용하였다.

석실 안의 모서리를 죽여 쌓기 위한 모줄임은 넓고 긴 장방형의 판상석(板狀石)을 사용해 2단으로 하였다. 그 위로 둥글고 큰 편평한 돌을 올려 천장석으로 하였다. 연도의 입구는 판상석 하나를 세워 막았고, 연도 위의 개석도 판상석으로 덮었다.

강원도 춘성지역에서 고구려형식을 갖춘 모줄임식천장〔抹角式天障〕의 석실분의 규모와 내부가 밝혀지게 된 것은 이 고분이 최초이다. 또한 내부의 바닥과 시상대가 회다짐으로 처리된 것도 처음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고분은 비록 고구려지역에서 이러한 규모의 석실에 보이는 벽화는 없지만 고구려 단실분(單室墳)의 양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음을 볼 때, 축조시기는 적어도 6세기 중반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으며, 지방의 한 호족무덤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문헌

『중도(中島)』-진전보고(進展報告) Ⅱ-(이건무 외, 국립중앙박물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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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조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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