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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여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3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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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여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3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31년(순조 31) 이여빈의 증손 이기정(李基定)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중원(鄭重元)·이인(李仁)·유심춘(柳尋春)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권두경(權斗經)·채헌징(蔡獻徵)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6권 3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단국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부(賦) 2편, 시 78수, 표(表)·책(策) 각 1편, 소(疏) 4편, 서(序) 3편, 기(記) 5편, 전(傳) 1편, 권3에 제문 3편, 행장 3편, 잡저 3편, 권4·5에 잡저 상·하 2편, 권6에 부록으로 연보·행장·가장·만사·뇌문·서원봉안문·상향축문·묘갈명·인수정중수기(因樹亭重修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는 이황(李滉)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읽고 중고의 선비들이 문장에 치우쳤으나 이황에 이르러 성리학 연구에 착수하여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칭찬하면서, 그 기쁨을 부체(賦體)로 나타낸 것이다. 시의 「계사춘(癸巳春)」을 비롯해 「제문경마포원석굴2수(題聞慶馬浦院石窟二首)」·「난리이래기근연속(亂離以來飢饉連續)」·「음증우동제우(吟贈愚洞諸友)」 등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읊은 것으로, 전쟁의 참상을 잘 나타내고 있어 야사로서 가치가 있다.

소의 「양선생변무소(兩先生辨誣疏)」는 이언적(李彦迪)과 이황의 문묘 종사를 반대한 이이첨(李爾瞻)을 공박하고, 두 사람이 학계에 끼친 공로와 덕망으로 보아 문묘 종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진언한 것이다. 잡저의 「용사록(龍蛇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1598년에 끝날 때까지의 사실들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다. 궁중과 민간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을 낱낱이 기록한 뒤 그 결과를 부기하고 원인을 규명한 곳도 있어, 임진왜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시사잡록(時事雜錄)」은 상·하편에 달하는 많은 양으로, 정여립(鄭汝立)의 난과 정인홍(鄭仁弘)·이이첨의 전횡, 정온(鄭蘊)·정구(鄭逑)의 학문에 대한 이야기 등, 광해군 당시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우록(師友錄)」은 스승 한우(韓佑)를 비롯해 그 제자 허충길(許忠吉)·이희득(李希得)·박승임(朴承任) 등 30여 명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밖에 자기의 취미와 학문 연구를 표현한 「인수정서(因樹亭序)」·「석양와기(夕陽窩記)」·「취사옹전(炊沙翁傳)」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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