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파극 초창기에 대중연극을 주도하였던 신파극단.
개설
자금은 김소랑의 처 마호정(馬豪政)이 대었다. 단성사(團成社)에서 창립공연을 가졌으며 신극사상 두번째 여배우인 마호정을 부좌장으로 삼아 이채를 띠었다.
연원 및 변천
그러나 1923년에 우리 것다운 신극을 공연한 토월회(土月會)의 등장으로 신파극단들은 흩어지거나 지방으로 밀려나 유랑극단이 되었는데, 이 극단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결속하여 신파극의 맥을 이어나갔다. 지방공연을 다니면서도 토월회에 자극을 받아 부단히 자체개혁을 하면서 이른바 개량신파극을 하였다.
따라서 이 극단은 당대를 대표할 수 있는 신파배우들인 강홍식(姜弘植)·성광현(成光顯)·전경희(全景希)·이종철(李鍾哲)·이애리수(李愛利秀)·이경설(李景雪)·신은봉(申銀鳳)·전옥(全玉)·나품심(羅品心) 등을 단원으로 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12년 동안 이 극단을 이끌던 김소랑·마호정 부부가 재정적으로, 또 건강상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에 1929년 말엽에 해산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신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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