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책. 목판본. 1924년 9대손 정섭(廷燮)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정섭의 발문이 있다. 초고본이 소실되어 여러 문헌에 산재한 것을 발췌했기 때문에 양은 매우 빈약하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13수, 제문 1편, 소(疏) 2편, 권2·3에 부록으로 만사 5수, 가장(家狀), 행장, 묘지, 묘갈명, 병암서원(屛巖書院)의 봉안문·고유문·축문 등 각 1편, 사우수창록(師友酬唱錄) 17편, 부록(裒錄), 사우록(師友錄), 권4에 습유로 시 8수, 서(書)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많지 않으나, 「강선사재(講仙査齋)」·「검단관어(黔壇觀魚)」 등에서는 저자의 사고와 정취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야좌서시중제(夜坐書示仲弟)」와 「여중제야독(與仲弟夜讀)」은 후학들에게 절실한 교훈이 되는 작품이다.
소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은 뒤 축성·선장을 강조한 「남북난후의축성선장소(南北亂後擬築城選將疏)」와, 기축옥사에 연좌된 최영경(崔永慶)의 신원을 호소한 「최수우당영경변무소(崔守愚堂永慶辨誣疏)」 등이 있다.
특히, 「남북난후의축성선장소」는 왜적이나 북융(北戎)이 우리의 무방비 상태를 정탐하고 다시 침입할 것을 우려하며, 영남·해서 두 곳에 웅장한 성을 쌓고 훌륭한 장수를 뽑아 배치하여 방어 태세를 강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는 매우 치밀하고 현실성 있는 요구가 담겨 있다.
예컨대, 축성의 인력은 신역(身役)을 도피하고 있는 수많은 승도(僧徒)를 동원하고, 화구(火具)의 경비는 여정(餘丁)·목첩(木帖)·가목(價木)에서 낭비되고 있는 경비로 조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장수를 선발함에 있어서는 직위의 고하와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오직 재능 위주로 선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부록은 모두 저자의 전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