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북도 평산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포곡식 성곽. 산성.
개설
내용
성벽이 밖으로 내민 5개소에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을 설치하였으며, 성가퀴[城堞]는 이미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홍예형(虹霓形)으로 냈는데, 동문과 서문에는 18세기에 고쳐 세운 문루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동문은 잘 다듬은 너비 2.4m의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합각식 단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에는 정면에 ‘先得樓(선득루)’라고 새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곳은 성 안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동문 가까운 곳에는 수구문(水口門)이 설치되었고, 서문에는 너비 3.07m의 위 홍예문 축대에 동문루와 꼭같은 규모의 합각식 건물을 세웠다.
성 안에는 물원천이 풍부하여 평양 대성산성(大城山城)의 못 형태와 비슷한 인공연못과 우물이 있으며, 왕건이 고려를 세울 당시의 주요 신하들을 제사하던 사당인 태사사(太士祠) 건물이 있었는데 6·25 때 파괴되고 비석만 남아 있다. 이 밖에 산성 안에는 망월사(望月寺), 군기고, 북창 등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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