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971년 후손에 의하여 편집, 간행된 듯하다. 권두에 김위(金鍏)의 서문이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48수, 권2에 문(文)·기(記) 각 2편, 잡저 5편, 권3·4에 부록으로 연보·실기·묘표·창의유사(倡義遺事)·제문·만사·서계서원기(西溪書院記)·서계서원봉안문·춘추향사축문(春秋享祠祝文)·본향사림포천문(本鄕士林褒闡文)·유사·발(跋)·연경서원회강록(硏經書院會講錄)·유계강록(柳溪講錄)·삼성록(三省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병화에 유실되고 남은 시가 45수에 지나지 않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한 일 외에는 일상을 오로지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던 생활의 편모가 군데 군데 보인다. 「환성정(喚惺亭)」과 「육휴당(六休堂)」은 자신의 당호를 소재로 하여 지은 것이다.
「차곽노탄길보견증일률이절(次郭蘆灘吉甫見贈一律二絶)」 이하 8수에는 곽삼길(郭三吉)과의 친분과 임진왜란의 참상이 묘사되었는데, 이 가운데 원운 3수는 곽삼길의 시이다. 그 밖에 주신언(朱愼言)·서사원(徐思遠)·전춘년(全春年)·곽재겸(郭再謙) 등의 시도 실려 있다.
문에는 「향교이건상량문(鄕校移建上樑文)」이, 기에는 「육휴당기」와 「환성정기」가, 잡저에는 「가훈(家訓)」·「성학조열(性學條列)」·「격오도암문(檄吾道菴文)」·「답초유사학봉김선생서(答招諭使鶴峰金先生書)」가 각각 실려 있다.
이 중 「격오도암문」은 의병모집을 주창한 격문이고, 「답초유사학봉김선생서」는 소모관(召募官)이 되어달라는 김성일(金誠一)의 요청에 흔쾌히 승낙하는 내용이다. 거의 소실되고 남은 일부 자료지만, 조선 중기의 사림문학(士林文學)과 임진왜란 연구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