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사장 노태준(盧泰俊), 발행인 겸 편집·인쇄인 강인봉(姜仁鳳), 편집부국장 최진태(崔軫台) 등의 진용으로 창간하였다. 정부수립 이후 공산당이 불법화된 시기에 발간되었음에도 좌익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창간 직후 이광수(李光洙)의 「서울」이라는 장편소설을 연재하였는데, 그 내용이 공산주의사상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것이라고 하여 공보처의 중단경고를 받기도 하였다. 50여회 가량 연재되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이 공산청년동맹의 지하조직에서 활발하게 행동하는 장면이 매일 계속하여 묘사되었기 때문이었다.
6·25동란으로 부산에 피난하여 계속 발행하였으나, 휴전 후 서울에 돌아온 뒤 경영난에 부딪혀 사장 겸 발행인 임원규(林元圭)에 의하여 명맥만 이어오다 1954년 4월 25일장기영(張基榮)에게 판권이 이양되었다.
이 무렵 발행부수는 8,000부 정도였으나 유가지(有價紙)는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장기영이 계속 발행하다가 같은 해 6월 8일자 제1,236호를 마지막으로 『한국일보』로 개제되었고, 지령은 그대로 계승되어 발행하였다.